강아지에게 감시 당하고 있다

와이프가 친구들과 발리 여행을 갔다. 그 말은 집에 있는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내가 좀 더 시간을 들여 돌봐야한다는 얘기다. 회사에는 와이프가 돌아올 때까지 오후 반차를 쓰겠다고 이미 보고를 했고, 업무가 자유로운 곳이라서 다들 이해를 해주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돌봐야하는 첫째 날, 오후 반차를 쓰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면 차량이 도착했다는 여자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기 때문일까,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현관 앞에 미리 나와서 나를 반겨준다. 강아지가 오두방정을 떨고, 뒤에서 고양이는 그 모습을 보고, 그 정도 오두방정까지는 아닌데 싶은 생각인건지… 잘 들어왔는지 확인만 하고 들어간다. 아무튼 강아지를 진정시켰다.

마침 그날은 자동차 미션오일을 교체하기 위해 예약을 잡아둔 날이라, 강아지 배변을 하고 잠깐 놀아준 후에 집을 나와서 한 시간 정도 볼일을 보고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강아지가 서럽게 운다. “야 1시간 정도만 다녀왔는데 왜 이러냐?”. 그래도 서럽게 운다. 무언가 촉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와이프는 집에 없고, 주인은 잠깐 들어왔다가 나가니 “또 집에 혼자 있어야 해?” 라는 생각을 하는 건가? 그렇게 둘째 날이 되었다. 그날도 자동차 정기검진을 예약해뒀기에, 집에 도착해서 강아지 배변 시키고, 잠깐 놀아주고, 강아지에게 잠깐 나갔다가 오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서는데, 그 두꺼운 현관문이 닫히기도 전에 집에서 탈출했다. 허~ 강아지를 다시 집에 들여놓고 간식 주고 나오는데, 그때부터 울부짖는다. 아파트 비상 계단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운다. 진짜 어디 간 것 처럼 발소리를 내고, 언제까지 우는지 지켜봤는데 5분, 10분이 되어도 계속 운다. 평상시에는 “어~ 다녀와요” 이런 느낌인데, 역시 이 녀석 뭔가 촉이 있나보다. 계속 듣다보니 우는 소리는 조용해지고, 예약시간에 늦을까봐 급히 출발했다. 집에 현관을 들어서니 역시나 어제처럼 서러운 소리를 낸다.

그 이후로 강아지의 감시가 무척 심해졌다. 화장실을 갈 때도 따라오고, 화장실 문을 열어보면, 그 앞에 누워서 지키고 있다. 약국에 약을 타러 잠깐 나왔을 때도 현관문을 쏙~ 빠져나와서, 결국 그 더운 시간에 산책을 했다. 입 벌리고 혀를 내밀면서 헥헥…

아 3일차는 새벽에 텃밭을 다녀올 일이 있어서, 강아지를 데리고 갔다. 밭일을 해야 하는데 모기도 많아서 텃밭에 내려 놓을 순 없고, 차를 멀찍히 주차하고 뒷문을 연 다음에 그 곳에 강아지를 쉬도록 했다. 그 뒤로는 강아지 시야에서 내가 사라지면 찾는다. 고개를 빳빳히 쳐들고 주인놈이 어디에 있나 여기저기 둘러본다. 나를 찾으면 다시 고개를 떨군다. 그래서 “강아지 시야에서 사라졌겠군” 하고 생각이 들면 내가 여기 있다는 표시로 동료들과 계속 대화를 해야했다.

이제 4일차인데 내일 출근이 걱정된다. 이렇게 감시가 심한데 어떻게 집을 나와야 할까. 가방 메고 있으면, 회사 간다는 걸 알텐데(내 생각에는), 조용히 평소처럼 다녀오라고 하지 않을까? 와이프가 없으니 강아지가 분리불안이 갑자기 생겼다. 아니 갑자기 엄청나게 증폭이 됐다.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작은 방과 거실 사이 문틈에 누워서 자는 건지? 그냥 누워있는 건지? 나를 감시하고 있다.


guest
0 대댓글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Would love your thoughts, please comment.x
()
x
Scroll to Top